메뉴 건너뛰기

서각/서예 전각의 정의 & 역사

2008.10.09 18:10

관리자 조회 수:1120

* 전각이란?

나무.돌.금옥(金玉) 등에 전자(篆字)로 인장(印章)을 새기는 일, 또는 그 새긴 글자.
주로 전서체로 새기기 때문에 전각이라고도 한다.

서예나 그림을 그린 후에는 자기 이름이나 호(號)를 쓰고 도장을 찍는다.
이 도장은 문인묵객(文人墨客) 스스로가 새기는 것이 통례이다.

* 전각의 유래와 역사

예부터 중국에서는 인장이 쓰였는데, 가장 발달하였던 시기는 한대(漢代)였다.
11세기 송대(宋代)에 이르자 새로운 금석학(金石學)의 발달로 한나라의 인장이 부활하게 되었고 15세기 명대(明代)에 이르러 새기기 쉽고 아름다운 석재(石材)의 발견으로, 이전에 상아를 쓸 때와 같이 장인(匠人)들에게 인장을 의뢰하지 않아도 쉽게 새길 수 있게 되어 문인(文人)들은 장인예(匠人藝)로서는 이룰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이루어놓았다.

수많은 문인들의 손을 거치는 동안, 전각은 시(詩)·서(書)·화(畵)와 병칭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초기의 창시자는 문팽(文彭)과 하진(何震)이며, 청대(淸代)에 이르면 정경(丁敬) 등의 한인(漢印) 연구로 더욱 새롭게 발전하였다. 그들은 출신지인 항저우[杭州]의 아명(雅名)을 따 \'절파(浙派)\'라는 세력을 이루기도 하였다.

청대는 전각의 흥륭기(興隆期)로, 등석여(鄧石如)·조지겸(趙之謙)과 같은 명인이 잇따라  나타났고 청대 말에서 중화민국 초에 걸쳐 활약한 오창석(吳昌碩)은 구중국(舊中國) 전각의 마지막 대가였다.

* 한국 전각의 역사

한국의 전각역사는 인장이 사용되기 시작한 고려 때부터이다. 당시는 대부분 동인(銅印)·석인이었고 모양도 4각형, 6각형, 원형이었다. 자체(字體)는 대부분 구첩전(九疊篆)이며 배자(配字)는 방사선식으로 되어있어 원주를 향하여 머리를 두고있다.

이같은 고려 전각의 유풍은 조선으로 계승되어 상서원(尙瑞院)에서는 구첩전과 소전체(小篆體)로 동인 ·철인 등을 만들었다.   역대 임금의 많은 어보(御寶)가 만들어졌으며, 서예 · 회화의 발달과 함께 문인 스스로가 전각하는 사인(私印)이 유행하였다.  미수(眉戒) 허목(許穆)은 한국 전각의 제1인자이며 전각을 남긴 많은 사람 중에서 자기 스스로가 전각하였다고 믿어지는 문인문객은 정학교(丁學敎)·정대유(丁大有)·윤두서(尹斗緖)·오경석(吳慶錫)·이상적(李尙迪)  김정희(金正喜)·김명희(金命喜)· 김상용(金尙容)·오세창(吳世昌) 등 20여 명을 손꼽을 수 있다.  재료는 대개 부드러운 납석계(蠟石系)의 돌을 사용하고 도구는 철필(鐵筆)이라는 양날의 손칼을 사용한다.

* 전각의 종류

전각의 종류에는 성명을 새긴 성명인, 호를 새긴 아호인, 좋아하는 문구를 새긴 사구인(詞句印), 작품의 소장을 확인하기 위한  수장인(收藏印), 새·물고기 등 동물문양을 새긴 초형인(肖形印) 등이 있다. 성명인에는 백문인이, 아호인에는 주문인이 주로 쓰이며, 사구인에는 서화 폭의 우측 상단에 찍는 두인(頭印)과 중간에 찍는 유인(遊印)이 쓰인다.

각법의 종류는 양각과 음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양각은 주문인(朱文印)이라 하며 바탕 부분을 새겨내는 것으로 찍었을 때  붉은색의 글씨가 된다. 음각은 백문인(白文印)이라 하며 글씨부분을 새겨내는 것으로 찍었을 때 흰색의 글씨가 된다.